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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따스한 햇빛과 벗어버린 코트. 미세먼지와의 싸움과 함께 이제 정말 봄이 왔다는 것이 실감나시죠. 새로 피어나는 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도 사라지고 이제는 따스한 나날만이 가득합니다. 봄은 싱숭생숭한 계절입니다. 얼어있던 것들이 녹는 속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더 움직이고 싶고, 더욱 활동적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계절이죠. 밖을 나서면 마주하는 색색의 꽃들과 푸른 나무들. 공원을 가득 메운 연인들과 가족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준비해 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유럽 여행. 그 길고 길었던 유럽에서의 길고 긴 기록을 연재해보고자 합니다. 기억을 위한 기록. 지금 시작합니다.
● 스페인, 마드리드 – 솔 광장
현지시간 23:00 쯤, 스페인 마드리드 솔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랐을 때의 그 쾌감. 마치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막이 걷히듯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 밤이 위험하다는 유럽은 대체 어디에 있는지, 광장을 가득히 메운 사람들. 잠시 한 바퀴를 돌아봅니다.
'도착했구나’ 약간의 경계감과,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유럽의 첫 느낌과 함께 인천공항에 있던 나는 불과 몇 시간만에 낯선 이방인이 되어 이곳에 서있습니다. 캐리어를 끌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주변 이목을 집중시키는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투박한 돌길. 유럽 가로등 특유의 노란 조명과 다양한 길거리 공연 속 유쾌한 웃음소리와 환호.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짜릿했던 그 강렬한 첫인상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숙소에 이동해서 발코니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습니다. 선선하면서 눅눅한 공기가 들어옵니다. 코에 느껴지는 그 느낌은 늦 여름밤 특유의 향이 그대로 녹아 있었습니다. 그곳에 서서 멍하니 거리를 구경했습니다. 솔 광장에서 가까운 곳이라 유동인구가 상당했고, 그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특히나 눈길을 끄는 것은 어떤 노랫소리와 무리들의 행렬이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싶어 핸드폰을 꺼냈습니다. 곧이어 눈에 바로 띄는 검색어 순위 1위. '마드리드 2:1 셀타 비고’ 그랬습니다. 오늘은 프리메라리가 경기가 있던 날이었고, 불과 몇 시간 전에 레알 마드리드는 홈구장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었습니다. '이게 유럽 축구의 열기이구나.'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어서 저기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열정적이고 뜨거운 분위기는 여름 밤과, 그리고 갓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의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우린 그 열기에 동참하고자 했습니다.
● 스페인, 마드리드 - Rosi La Loca
현지 시간 00:00. 저는 미리 점찍어 둔 음식점으로 향했습니다. 밖은 역시나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빽빽함은 여름밤의 기온을 좀 더 상승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덥지근한 열기는 오랜 비행에 쪄들은 살결에 그대로 달라붙었지만, 곧 들이킬 맥주 한잔과 샹그리아 한잔을 상상하며 우린 빠른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곧 도착한 Rosi La Loca. 그런데 세상에나. 이 시간에 우린 대기를 해야 했습니다. 00:00을 넘은 시간인데도 말이죠. 길게 늘어선 음식점 중에 유독 여기만 사람이 많았습니다. 나름 이것이 약간 반갑기도 했어요. 이는 제대로 된 음식점을 찾아왔다는 반증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우린 천천히 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메뉴를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며 시간을 때웠습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습니다. 다양한 메뉴를 고르는 재미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처음 그 느낌을 받아들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無)의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기다리는 시간은 마드리드를 유심히 관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마드리드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드리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우리 차례. 미리 주문을 넣은 덕에 바로 음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레어로 시킨 스테이크와 샹그리아. 버터향이 물씬 풍기는 핏빛 스테이크 육질과 뼈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기름 거품들. 그리고 포도주의 시원한 향을 그대로 간직한 샹그리아. 이 고기 한 점과 한 잔의 조화는 그간의 모든 피로를 씻어내는 기막힌 능력이 있었습니다. 씹을수록 찰진 스테이크의 쥬시한 육질은 문어만큼의 쫄깃한 식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약간 질기다 싶을 정도였는데 이것은 근육 덩어리의 소가 연상되는 그런 맛이었죠.
우린 그 분위기에 점점 빠져 들었습니다. 그 사이 샹그리아 잔은 계속해서 쌓였습니다. 중간중간 맥주잔도 쌓이고, 클라라 잔도 쌓였습니다. 그렇게 스테이크 한 접시를 다 먹을 무렵 우린 꽤나 많은 잔을 비웠고 알딸딸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첫날부터 과하지 않나 싶었지만, 기분 좋은 취기라는 것이 딱 이것을 말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은 완벽했습니다. 포만감과 피로가 가져다 주는 노곤함.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경쾌한 그것이 있는 스페인어. 유럽 특유의 노란 조명 속에서 우린 동시에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중요하다는데, 만약 그것이 정설이라면 우리의 여행은 이미 완벽한 수순을 밟고 있었죠. 그 만족감에 취해 자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우린 무작정 걷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린 식당을 나왔습니다.
● 스페인, 마드리드 – 마요르 광장
잠에 들기에는 아쉬운 밤. 우린 무턱대고 주변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처 없이 떠난 발걸음이 닿은 곳은 우연하게도 마요르 광장이었습니다. 늦은 밤.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도 사라졌고, 눈앞을 수놓던 화려한 조명도 사라졌습니다. 모두 떠나간 자리에는 몇몇 가게의 등불만이 외로이 광장을 지키고 있었고, 그 나머지 빈 공간을 적적함과 고요함이 메꿔주고 있었습니다. 정중앙에 있는 청동 기마상으로 다가갔습니다. 동상의 주인공은 펠리페 3세. 1619년에 지어진 이 광장을 만들어낸 주인공입니다. 너무 넓어 황량하기까지 느껴지는 이 광장을 처량하게 홀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제가 서있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꼭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던 이곳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TV와 블로그에서 보던 그 시끌벅적함과 생동감을 잃어서일까요. 사실 이 광장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정적인 나와는 정 반대의 활발함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장 주변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고요함이 가져다주는 또렷한 집중력에 감사하며 마드리드의 첫 느낌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잠시 경유했던 상하이 푸동 공항의 풍경. 14시간 만에 도착한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과 잠시 헤맸던 지하철 탑승까지. 솔 광장의 열기와 만족스러웠던 숙소. 스테이크, 샹그리아와 함께한 첫 식사. 그 일련의 과정을 고이 간직해봅니다. 그렇게 한차례의 복기 후, 더 쓸쓸해질 것 같아 서둘러 광장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너무나 쉽게 여행의 첫날밤이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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