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

2022년 1월호

 

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 5000여 여성 노동자들은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먼지 자욱한 현장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해야 하였으나,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 등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죠. 전 의류노동자들의 시위는 결국 1910년 '의류노동자연합'이라는 조직을 탄생시켰고, UN은 이를 기념하여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선정, 1911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펼쳐오고 있습니다. 1911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평등한 사회를 만들었을까요. 2018년 당신은 양성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까? 어쩌면 저는 여러분께 조금 불편한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붙여, 이기적인 여성이나 반사회적 인물로 치부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양성평등은 '남자와 여자가 같은 권리와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고, '성별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든 성불평등

 

 

근래에 여권이 신장되었다는 기사가 드문드문 보입니다. 여성 장군이 몇 명이 진급되었는지, 여성 판사는 몇 명이나 임용이 되었는지 등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그 위상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런 뉴스가 나오는 것 자체가 아직 불평등한 사회가 아닐까요. 남성 장군이 몇 명이 진급되었는지, 남성 판사는 몇 명이나 임용되었는지에 대한 뉴스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에대한 차별이 없다는 것은, 성에 대한 뉴스가 생성되지 않는 것이라 믿습니다. 올해는 장군이 총 몇 명이나 진급했는지, 판사는 몇 명이나 임용되었는지에 대한 뉴스가 나와야 양성평등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도 여학생이 다니는 중학교는 여중이고, 고등학교는 여고입니다. 남학생이 다니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남중, 남고라고 말하지 않지요. 최근 유관순 '누나'라는 호칭에서 '열사'라는 호칭으로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똑같이 독립운동을 했는데, 남성 독립운동가의 호칭은 의사, 열사 등을 붙였는데, 유관순 열사만 오랜 세월 누나라고 불렸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무심코 넘어가던 모든 것들이 하나 하나 이상하게 여겨집니다. 이런 현상을 이상하게,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인식과 생각을 지배합니다. 젠더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젠더감수성이 있어야, 우리 주변에 당연했던 성불평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티끌처럼 티나지 않게 숨어있는 성불평등, 그 한 톨의 티끌을 없애는 것이 양성평등의 시작입니다.



● 남자도 필요한 양성평등

 

 

위의 글은 우리에게 해리포터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한 엠마 왓슨이 UN에서 연설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남자아이는 지휘자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여자아이는 연약한 체형이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이 옳을까요?

 

 

남성 또한 이런 사회관념 속에서 고통받고 살았을 것입니다. MAN BOX 영상에서 우리는 아버지가 유독 특이한 아버지는 아닐 겁니다. 한국 대다수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것이 가장이고, 아버지는 힘든 티도 내서는 안 되는 남자입니다.'라는 말은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그저 사내아이로 태어났을 뿐인데, 태어나자마자 집안의 기둥으로 길러집니다. 울어서도 안 되고, 로봇을 가지고 놀아야 하며, 데이트 비용을 다 내야 하며, 대범한척 굴어야 하는 남성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도 양성평등은 실천되어야 합니다.



● 나다운 삶을 살고, 너다운 삶을 응원하자!

 

 

P&G는 광고에서 '여자아이다운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달리는 모습도, 싸우는 모습도, 던지는 모습까지 우스꽝스러운 것이 여자아이다운 것으로 정의하고, 모든 여자아이들은 이래야 한다고, 그동안 사회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교육하진 않았을까요. 그리고 반대로 남자아이들은 남자답기 위해 여자아이처럼 달려서도 안 되고, 여자아이처럼 싸워서도 안 된다고 교육받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우리는 '남자답게', '여자답게'의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그렇지 못하는 것을 못견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들에게 강요를 합니다.



● 5:5가 아닌 7:3

 

 

영화관이나 버스터미널의 화장실에서 여자화장실만 줄이 긴 것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남성은 여성보다 일일 화장실 이용 횟수가 적고, 시간 또한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그래서 여자화장실은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있죠. 양성평등화장실(Gender Equality Toilet)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국립대전현충원은 평소 국가 최고의 호국공원인 국립대전현충원의 운영 기본 원칙인 단순한 법적, 행정적 책임을 훨씬 초월하는 ‘역사적 책임의식’이라는 소명 아래, 이번에 건축된 화장실은 남녀 화장실 공간비율을 여성 우위의 7:3 비율로 결정해서 진정한 양성평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양성평등 화장실』로 그 명칭을 정했습니다. 그 이후 많은 공공화장실이 이런 태세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평등하다고 하면 똑같아야 한다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은 양성평등이 남성과 여성이 평등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성만의 권리주장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양성평등은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운동입니다. 사회 정의상, 평등은 같아짐(Same)이라기보다는 공정함(Faimess)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동등한 혜택과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평등입니다.

 

 

양성평등은 세상의 절반이 나머지 절반을 도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끝 맺으며, 여러분 스스로에게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고 물어보는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또한 이 글이 저울의 무게를 맞추기 위해 여러분이 수평추 하나를 들어올리는 일을 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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