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

2022년 1월호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름 휴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던 폭염으로 인해 어디로든 떠나고픈 마음이 절실한 7월, 8월 이었습니다. 저는 주말을 이용해 베트남에 다녀왔었습니다. 숙소에서 물놀이도 하고, 에어컨이 빵빵한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이 더욱 덥게 느껴지더군요. 동남아보다 더한 더위. 어서 빨리 기록적인 폭염이 물러가고, 파란 하늘이 매력적인 가을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 날을 기다리며 초가을 날씨의 스페인 여행기 지금 시작합니다.



● 시체스의 골목 – 시체스

 

 

바다의 아름다움만을 간직할 것 같았던 시체스는 오밀조밀한 건물들의 아름다움도 갖고 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바다에 눈이 멀어, 정신 없이 뛰어가느라 보지 못했던 건물들이, 돌아갈 시간이 되자 비로소 눈에 밟힙니다. '이런 풍경이었구나!‘ 역에 일찍 도착해서 기차를 기다리려던 마음, 혹여 기차 시간을 놓칠까 전전긍긍했던 마음. 그 조급함은 이렇게 다른 풍경을 접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곳은 전형적인 휴양지의 골목길입니다. 상점가, 음식점, 기념품 상점 등 관광지를 이루고 있는 보편적인 건물들이 모두 모여 자신의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어느 곳은 깃발로, 어느 곳은 페인트 색깔로, 어떤 곳은 호객꾼의 미소로. 그 모두는 과하지 않은 수수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잡티만을 살짝 가리기 위해 분을 찍어 바른 어떤 사람의 투명한 낯처럼 말이죠.

 

그렇게 자연과 맞닿은 이곳은 자연을 그대로 빼다 박았습니다. 골목 곳곳의 색감은 바다를 닮고, 해변가의 모래사장을 닮았습니다. 시체스의 대표적인 풍경 그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조금 늦게 가면 어떤가. 이런 풍경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리고 지금이 마지막일 텐데요. 바다에 들어가서 축축하게 젖어있던 발이 마르고, 그 촉감을 자잘한 모래 입자들의 쓸림으로 대체할 즈음 우린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습니다.



● 시간을 사다 – 모리츠 맥주 공장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한 바르셀로나. 다음 일정인 구엘 공원까지 얼마 시간이 남지 않은 상황. 비용과 시간의 기로에서 우리는 시간을 택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 버스를 포기하고 모리츠 맥주 공장에서 맥주 한잔을 걸치고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스페인에서의 첫 택시. 얼마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지금 당장의 시간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오리지널 Moritz 1L와 크로켓 주문. 역시나 맥주 공장에서 바로 마시는 갓 뽑아낸 맥주는 실패할 확률이 0%입니다. 깨끗하게 넘어가는 맛. 프로랄 계열의 풍부한 향은 한 모금, 한 모금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매콤한 소스가 올라간 크로켓 역시도 특유의 기름진 풍미가 맥주와의 찰떡궁합을 자랑합니다. 시간에 쫓겨 버스를 탔다면 느끼지 못했을 이 여유와 행복함.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에 시간과 행복이 있다지만, 저는 이 순간 시간과 행복을 돈으로 산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세 한 병을 비우고 모리츠 맥주공장을 나와 택시로 십여 분을 달려 구엘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예상치 않게 택시비로 지출되었던, 시간과 맞교환 한 몇 유로의 지출은 가성비의 측면에서 꽤 괜찮은 거래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흡족해졌습니다.



● 구엘공원의 의자 - 구엘공원

 

 

가우디 건축의 진수라는 그곳. 과자의 집이라고도 불리는 구엘 공원. 실제로 마주하자 그 동화 같은 광경은 자신의 애칭이 꽤나 적절한 비유였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초콜릿 쉬폰 케이크 시트에 정성껏 올려놓은 하얀 생크림. 그리고 그 단조로운 구성에 포인트를 주는 색색의 스프링클. 백화점 지하 1층 진열장 어딘가에 있을법한 먹음직스러운 컵케이크의 모습입니다. 왠지 이곳에는 녹진하고 달콤한 향이 나는 것 같아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런 향은 전혀 나지 않았지만, 고지대의 맑은 공기는 구엘 공원을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하는, 오감을 깨우기 위한 재료로서는 충분했습니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인원만이 입장 가능한 칼 같은 원칙은 구엘 공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고지식한 원칙 덕에 일찍 도착한 이점을 온전히 누리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질서 정연함과 문화재를 대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시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구엘 공원의 프리 존에서 15분 정도를 기다린 후, 입장 줄에 섰습니다. 15분 전, 단호하게 NO를 외치던 검표원의 입가에 이제야 환영의 미소가 번집니다. 드디어 가우디의 마음속 순수함이라는 공간, 그 한편을 엿보러 갑니다. 그가 현실로 불러들인, 그가 창조해낸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입구 정중앙의 과자의 집을 지나서 계단을 오르자 구엘 공원의 트레이드 마크인 도마뱀이 저를 반깁니다. 이미 그 앞은 문전성시입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도마뱀과 사진 한 장 찍어보려 안달입니다. 그 번잡스러움이 싫어서, 급히 사진 몇 장을 남긴 후 공원의 맨 꼭대기로 올라갔습나다.

 

바르셀로나가 내려다보이는 맨 끝으로 다가갔습니다. 구엘공원 옥상 정원의 가장자리를 에두르고 있는, 타일로 이루어진 의자의 중간쯤에 앉았습니다. 길게 연결되어있는 의자, 불규칙적으로 휘어있는 연결 곡선은 뱀이 멋대로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덕인지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긴 의자였다고 합니다. 비록 새로운 기록을 수립한 어떤 의자에 의해 과거의 한 영광을 빼앗기긴 했지만, 가우디가 세계에서 가장 긴 의자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안타까움이 남지는 않습니다.

 

가우디의 설계 방향의 1순위는 조화였습니다. 사람과 사물, 그리고 자연까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의자는 그 딱딱한 속성에 불편함을 야기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엎고 수려한 곡선을 통해 지친 여행자의 허리를 유연하게 흡수합니다. 그리고 자연을 빼다 박은 모자이크 타일 조각의 색깔은 지중해와, 야자수를 품은 주변의 풍광에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의자 곳곳의 구멍은 우천 시 높은 지대의 물을 흘러내려 보내는 배수구 역할을 하며 아래의 분수대로 이어지게끔 합니다. 자원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깨진 병과 타일 조각을 재활용하여 모자이크에 적용한 것과 같은 궤입니다. 이렇듯 구엘 공원의 의자는 미적 요소뿐 아니라 실용적인 요소까지 겸비한 가우디 철학의 집약체였습니다.

 

현실성 없는 동화 같은 상상력 안에 담긴, 지독히 현실적인 증거들은 마음을 괜히 싱숭생숭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궁극적 의도와 다른 몇 등의 기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어쩌면 가우디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 편안한 의자가 아닌, 단지 긴 의자라는 타이틀에 서운해 무덤 속에서 통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 편한 의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주관적인 속성은 대다수의 동의를 받는다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매우 주관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의자라는 타이틀을 내어줬습니다. 가치 판단에 있어서 정량적인 측정 요소에는 한계가 있고, 세상만사의 의도와 의미는 늘 일치할 순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구엘공원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누군가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에.

 

그 편한 의자에 완전히 몸을 기댔습니다. 양쪽으로 손을 뻗어 그의 노고를 쓰다듬듯 타일에 갖다 댑니다. 서늘한 타일의 맨질맨질함과 타일 사이의 까끌까끌함을 건너 건너 어루만집니다. 안온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아 고개를 뒤로 푹 꺾었습니다. 유독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의 큰 그림을 속인들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 미완성된 습작처럼 공사는 중단되고 일부만이 남았지만, 구엘 공원의 의자는 제가 지금껏 만났던 의자 중 가장 완벽한 의자였습니다

 

여행기는 잘 보셨는지요. 새파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의 즐거움. 가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오늘입니다. 모두들 늦여름 마무리 잘 하시고 저는 다음 여행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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