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

2022년 1월호

 

여러분 안녕하세요. 봄기운이 완연한 5월입니다. 이미 벚꽃은 지고 있지만 한층 높아진 기온과, 짧아진 옷들이 그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더욱 커지는 요즘입니다. 여러모로 기대가 많이 되는 2021년의 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뭐 그래도 아직은 방심은 하면 안되겠지요.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조금만 더 고생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5월의 여행기 이어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바닷가 앞의 찬란한 문명

 

 

터키 시내에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인 시데라는 유적지를 향해 출발합니다. 시데는 철기문명을 인류에 처음으로 보급한 히타이트의 거점지입니다. 수천 년 이어진 해상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로 많은 대상과 귀족의 안식처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 속 여인이라 할 수 있는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와 첫 번째 밀월여행을 왔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몰을 감상하며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우린 그 일몰을 보기 위해 정말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타지에서 이렇게 속도를 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상황이 닥쳐오니 또 그렇게 되더군요. 그렇게 해서 결국 거의 일몰이 시작할 무렵 운 좋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폴론 신전을 향해 빠른 걸음을 했습니다. 가는 길에 보이던 바닷가의 일몰은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입니다. 약간은 흐린 날씨였는데도, 다양한 하늘의 면면을 모두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때문에 좀 오래 걸었는데도 그 여정이 지루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아폴론 신전. 정말 바다 바로 앞의 땅의 끝에 우뚝 서있는, 아니 조금은 외롭게 홀로 자리를 지켜낸 기둥이 있습니다. 지금은 온전하지 않고, 그 어스름한 흔적만을 간직하고 있는 신전입니다. 다만, 그것이 초라하거나 볼품없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상으로 그 모습을 복원해봅니다. 이곳에서의 밀월이라면, 너무나 행복했을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들더군요. 일몰과 바다 그리고 이 신전의 조명은, 너무나 완벽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뭐라 말이 나오지 않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한 시간이더군요.

 

조금 시간이 지나자, 더욱 짙어지는 하늘에, 그보다 더욱 밝게 빛나는 신전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고고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 최대한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단순히 이 기둥 몇 개를 보러 왔지만, 왕복 두 시간 이상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렌트를 하지 않았으면 꿈도 못 꿀 여행지였지요.

 

우리는 아주 깜깜해질 때 까지, 그곳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다시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 소도시 카쉬

 

 

다음날 아침, 안탈리아를 떠나 카쉬에 도착했습니다. 안탈리아에서 서남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한적한 바다 마을 ‘카쉬.’ 이번 여행의 시작과 끝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점에 우린 이 도시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을 온전히 휴식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바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 숙소. 이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발코니였습니다. 거실의 창문을 열면 바로 바다를 향해 내어져 있는 공간. 네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크기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눈앞의 풍경을 가리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높이의 난간. 검색하다 우연히 보게 된 발코니 사진 하나만으로도 “유레카”를 외칠 뻔했던 그곳. 우리는 어느덧 그곳에서 일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일몰 촬영을 위해 타임랩스를 설치하고 준비해 온 맥주 한 모금을 삼켰습니다. 작은 마을이 한눈에 담기는 위치. 내리막 비탈에 살짝 붓 터치를 한 듯 한적히 놓인 빨간 지붕의 주택들. 그리고 한쪽엔 모스크의 첨탑이 삐죽삐죽 이국적인 모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하나의 섬을 사이로 두 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왼쪽은 관광객을 기다리는 보트들이 정박해 있는 너른 해안가. 오른쪽은 한적한 요트들이 둥둥 떠다니는 작은 해안가.

 

어떤 고민이라도 풀어놓을 수 있는 하늘. 그리고 너른 바다. 굳이 맥주 한잔에 의지하지 않아도 털어놓게 되는 이야기들. 이것이 자연의 힘이었을까요. 멍한 눈으로 계속해서 풍경을 좇지 않아도 되는 평온함 입니다. 눈에 쏠려 있던 집중은 어느덧 머릿속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붉게 물든 하늘에 한국에서 털어내지 못하고 가져온 잡념을 풀어 녹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잡념의 농도는 옅어지고 하늘의 색은 짙어집니다.

이런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캐치프레이즈에 확 쏠렸던 마음 한편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만약 그런 이벤트가 생긴다면, 혹여 어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꿈꾸던 집은 이런 집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 매일 빽빽한 빌딩 숲을 지나고, 숨 막히는 만원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버스 손잡이에 위태롭게 매달리고. 그렇게 치열하고 바쁘게 달려 마지막에서야 멈추는 곳은 아파트 단지의 엘리베이터 앞. 뒤를 돌아보면 사방의 풍광을 막아선 아파트에 지쳐 이런 곳에 대한 로망이 슬며시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린 카쉬에서 많은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소하게 과자를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에 맥주 한잔을 하고.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저 멀리를 내다보았습니다. 화려한 불빛이나 조명 없이, 수많은 별빛이 내리쬐고, 바다의 파도 소리가 미세하게 귀에 닿는 곳에서. 결이 다른 한적함이 있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우러나오는 편안함. 우린 그렇게 잠시나마 꿈속의 집에서 살아보았습니다.



● 세계 최고의 바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늘을 확인했습니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과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너무나도 다행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 첫번째 목적지가 바로 꿈의 바다인 카푸타스 해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카쉬에 들른 이유도 이 곳의 바다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안탈리아에서 비행기로 이동하지 않고 네시간 고생을 하며 운전을 했던 이유가 바로 눈 앞에 다가온 순간입니다.

 

지중해 해변 중 가장 아름답다는 카푸타스 해변. 클레오파트라가 해수욕을 즐겼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그만큼 환상적인 바다겠지요. 이 곳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임팩트가 있던 곳입니다. 여긴 어떻게해서든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동선을 짜던 것이 생각이 나네요. 아무튼, 맑은 날만큼이나 발걸음 역시 가볍습니다. 이른 아침 얼른 숙소에서 나와 해변으로 향했습니다.

 

숙소에서 차로 30분의 거리. 이곳이 맞나 싶을 정도의 별 표지판도 없는 곳입니다. 도로가에 덩그러니 몇 개의 주차장만 있어 사실 좀 놀랐습니다. 처음엔 잘못 온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나, 차에서 내리자 그 생각은 일순간에 바뀌었습니다. 절벽 아래로 카푸타스 해변의 너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지요. 정말이지 압도적인 색감의 바다였습니다. 오죽하면 죽기 전에, 이 정도의 바다를 또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휴양지를 자주 가지 않음에도 개인적으로 기억에 꼽는 바다가 몇 개 있습니다. 스페인의 시체스, 미국 캘리포니아의 맨하탄 비치 정도인데 그 급이 다릅니다. 압도적입니다. 얼른 아래로 내려가봅니다.

 

심각하게 아름답습니다. 에메랄드 빛 바다의 완전체입니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입니다. 정말 잘 왔다는 생각만 머릿 속에 맴돌더군요. 비록 시간 관계상 해수욕은 할 수 없었지만, 이른 시간 한적한 바다의 여유를 이렇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복인 것 같다 생각해봅니다.

 

준비해간 고프로를 꺼내 바닷 속에 넣어보자, 물고기가 헤엄 치는 것이 그대로 찍혔습니다. 괜히 물에 다리를 담가보았습니다. 바닷가가 아니라 욕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발이 신기하기만합니다. 그리고 이 바다를 둘러싼 절벽들. 신들의 낙원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 일정으로 촉박한 시간이 아쉽더군요. 그렇게 한동안 바다를 맴돌았습니다. 렌트하길 참 잘했습니다.



● 이스탄불의 유적지

 

 

이제 다시 이동의 시간입니다. 파묵칼레에서 데니즐리 공항까지 약 80km를 이동합니다. 시간 조절은 완벽했고, 렌터카를 반납하자 한숨 놓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첫 번째 날 처럼 이스탄불로 돌아갔습니다.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짧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선, 부지런함이 필수입니다. 오늘도 역시 오픈하기 전 입장 줄을 섰습니다. 첫번째 유적지는 아야소피아 성당입니다. 첫 날 외부에서만 바라보아도 아름답던 그 곳입니다. 비잔틴미술의 최고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지요. 성당의 흔적과 이슬람 사원의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그 분위기가 압권입니다. 저 역시 꽃보다 누나 편에서의 방송을 볼 때 느꼈던 그 감정을 이어보려 방문했습니다.

 

이슬람과 가톨릭 문화의 합이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질적이면서도 낯설지 않은. 그 애매한 분위기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 동안 여러 문화 유산을 보아왔지만 이렇게 독특한 곳은 또 처음이었습니다. 서로 좋은 것만 베껴 만든, 기존 제품보다 더 성능이 좋은 신제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내부 공간 일부가 공사 중이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모두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곳을 직접 방문해 봤다는 것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예레바탄 사라이입니다. 아야소피아 거의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 곳입니다. 지하 궁전으로 유명한 곳인데 실제로는 저수지인 곳이지요. 이 곳 역시 꽃보다 시리즈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방문한 곳입니다. 대리석 기둥의 어두컴컴한 지하에 은은한 조명이 상당히 아름답더군요. 그리고 시원해서 참 좋았던 곳으로 기억합니다.

 

밖으로 나와 술탄 아흐멧 광장에서 지금까지 봤던 블루 모스크, 아야소피아 등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도시 전체가 유적지란 말이 맞습니다. 이렇게 오밀조밀하게 유적지가 모인 곳이 또 있을까 싶었네요.



● 이스탄불 최고의 야경

 

 

점심 식사를 하고 야경 스팟으로 이동합니다. 그 곳을 가기 위해 갈라타 다리를 지납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카라쾨이(Karaköy)와 에미뇌뉘(Eminönü)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갈라타 다리는 터키 문학, 영화, 시, 소설 등에서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곳입니다. 낚시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보고 터키의 실업률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답니다. 그리고 그 날 낚시 하는 사람은 꽤나 많았습니다.

 

다리를 건너 갈라타 타워로 이동합니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 갈라타로. 이 곳 역시 이스탄불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갈라타 타워는 터키의 이스탄불, 갈라타 지역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타워의 전망대에서는 보스포러스 해협과 골든혼 그리고 이스탄불 시내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이곳에서 야경을 감상하려 했으나, 매직아워를 보기 위해선 아주 오랜 시간을 미리 올라가서 대기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탑 위는 올라가보지 못하고, 그 느낌만 보고 내려왔습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뷔익 메지디예 모스크입니다. 오르타쾨이 모스크라고도 합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모스크로, 원래 사원이 있다가 무너진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채광되도록 설계된 스테인드글라스가 매우 아름답다고합니다. 그 아름다움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돋보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보스포루스 다리가 보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1973년 개방된 이곳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초의 다리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우리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 곳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야경이 좋다는 것도 한 몫 했지요.

 

파랗게 물이 들고 있는 하늘과 보스포루스 다리의 빨간 조명, 그리고 사원에서 나오는 은은한 노란빛의 조화가 참으로 좋습니다. 꿈꾸던 매직 아워가 눈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이 물들수록 각각의 색감은 더욱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바다에 둘의 빛이 반사되며 꿈꾸었던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지막 밤을 맞이하는 특별한 의미가 이렇게 아름답게 발현되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리와 같이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과도 저마다의 마음 속에서도 이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있겠지요. 아쉬움이 크지만, 너무나 완벽하게 모든 일정들을 소화했습니다. 죽기 전에 아마 또 오진 못하겠지요. 다른 갈 곳 들이 많으니. 서로에게 박수를 건네며, 이 추억을 공유하며 터키의 마지막 밤이 결국 끝났습니다.

 

여행기는 잘 보셨는지요. 이 편이 제가 집필한 마지막 여행기였습니다. 시간과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터키의 매력을 다 알려드리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최대한 다양한 터키의 모습을 보여드리려 했던 의도가, 조금이나마 독자분들에게 전달되었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이로서 18년 9월부터 연재한 여행기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미국 이야기, 베트남 이야기 등 무궁무진한 소재가 많았는데, 언젠가 블로그에서라도 꼭 선보이도록 해보겠습니다. 그 동안 부족한 글 열심히 읽어 주셔 너무나 감사합니다. 훗날 또 뵙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생활속 대주·KC > 와글와글 글로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와글와글 글로벌  (0) 2021.08.30
와글와글 글로벌  (0) 2021.06.28
스토리가 깃든 여행  (0) 2021.02.24
스토리가 깃든 여행  (0) 2020.12.30
스토리가 깃든 여행  (0) 2020.10.28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