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

2022년 1월호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기온이 올라가며 덩달아 불쾌지수까지 높아지는 하절기 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무척 힘든 시기이기도 하지요. 땡볕에 지치고 힘들 때 마다 오로지 하계 휴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하는 요즘입니다. 출발 전날의 그 설렘을 위해서 말이죠. 다들 즐거운 휴가가 되시길 기원하며 여행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몽마르트의 어느 펍에서 – 너무 좋아서 슬픈, 그런 날이 있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몽마르뜨 언덕. 이르다기보다는 애매한 시간입니다. 주변을 좀 걸어볼까 고민하다 점심을 건너뛰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오늘 먹은 것이라곤 밖으로 나오기 전 숙소에서 마신 물 한 컵과 베르사유 궁전에서 먹은 마카롱 3개가 끝입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몰입은 기본적인 욕구마저 잠재웁니다.

 

어중간한 시간대에 도착한 탓에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은 문을 닫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한 브레이크 타임에 딱 걸린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완벽하다고 확신을 했음에도 항상 존재하는 변수. 확신은 바람일 뿐 100% 란 없습니다. 확신이란 것은 99%의 바람일 뿐이죠. 이는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오늘 첫 식사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하는 수 없이 갈증이라도 해소하고자 근처의 한 펍에 들어갔습니다.

 

사람이 북적이는 횡단보도 앞,

길가 모퉁이에 자리한 볕이 잘 드는 바깥 테라스에 앉았습니다. 내부의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좋았으나, 오늘만큼은 일상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이름 모를 거리, 그곳을 지나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프랑스 파리의 민낯일 수 있는.

 

알아보지 못할 메뉴판을 치우고 우선 맥주 한 잔을 시켰습니다. 프랑스 대표 맥주인 블랑을 시키려 했으나, 하이네켄 밖에 없습니다. 프랑스에서 하이네켄이라니. 일본에서 호가든을 찾는 격입니다. 아쉽긴 하지만, 지금은 위스키나 와인이 어울리는 시간대가 아닙니다. 갈증과 허기를 생각해본다면 맥주가 최적입니다.

 

곧이어 나온 맥주. “메르씨.” 어색하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커다란 잔에 담긴 황금빛 액체. 코부터 갖다 댑니다. 살갗에 느껴지는 서늘한 냉기와 비릿한 보리 내음. 그리고 기포가 터지며 피부에 닿는 작은 물방울들. 벌컥벌컥 들이켜자 저절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됩니다. 마침 파라솔의 그늘 사이로 가늘게 몸에 닿는 햇빛이 꽤나 반갑습니다. 이내 뜨거워 곧 자리를 피하겠지만 직사광선의 첫 따스함의 기운은 차가운 맥주와 잘 어울립니다.

 

금세 비워진 한 잔. 모히또 한 잔을 더 주문했습니다. 알코올은 최대한 진하게. 켜켜이 묻어둔 민트 잎의 사이사이에 우러나오는 갓 수확된 녹색의 향이 입안의 텁텁함을 개운하게 세척합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오늘,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 몸속으론 차디찬 액체가 들어가는데, 몸과 마음은 점점 뜨거워집니다. 이것은 무슨 기분일까요. 혼자 있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애석한, 그런 미묘한 마음입니다. 알코올이 또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혼자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하지만, 그 크기만큼의 외로움을 감당해야 하기도 합니다. 늘 괴리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둘을 이루고 있는 부피의 크기가 달라질 때. 하필 이 시기는 늘 그렇듯, 불현듯 찾아옵니다. 중심축을 사이로 한쪽에 투하된 공허함의 무게는 점차 소멸하는 반발력을 갖고 있습니다. 아래로, 위로 수 번의 흔들림을 반복하고서야 멈춰 서는 진동입니다. 오늘도 역시, 아무 준비 없이 들이닥친 불균형에 비틀비틀 거립니다. 미동 없는 시선 뒤에는 마음만이 분주합니다.

 

외롭다는 푸념은 아무 걱정과 고민 없이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의 반증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다. 여행 계획을 짜거나, 글을 쓰거나, 술자리를 기웃거리거나.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었어도 자못 부산스러웠습니다. 그렇게 혹독하리만큼 스스로를 몰아세우다 보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여력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은 시시각각 몰아치는 누군가의 참견을 나름 합리적으로 받아 칠 수 있는 좋은 구실이자 어설픈 변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근심과 걱정이 없는 날, 이런 날은 유독 끙끙거림이 심해집니다. 독한 술이라도 마시고 한숨 자고 일어난다면 다시 정신 없는 내일을 맞이할 테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는 날입니다. 귀국을 하루 앞둔 파리이니까. 그 동안 저는 외로움을 회피하는 방법은 알았지만 극복하는 방법은 깨우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를 면밀히 관찰하고, 먹던 땅콩을 비둘기에게 나눠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답답한 상황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맥주 한 잔을 더 시켰습니다. 어그러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한쪽을 채우는 대신 나의 것을 조금씩 흘려보내기로 했습니다. 고르고 고르다 남은 그 방법이 지금으로선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었습니다. 반대쪽으로의 기울임. 이로써 다시 이전의 평정을 되찾을 테지만 다시 한번의 흔들림을 겪어야 했습니다.

 

좁은 출구로는 도저히 내보낼 수 없는 크나큰 부피의 기억들은 유연하지 않아 힘을 줄수록 바스러질 듯 위태했습니다. 그럼에도 윽박 댔던 이유는 어차피 일시적으로 흩어져나갈 기억이자 어느새 다시 되돌아올 기억이기에 가능했습니다. 더욱 처참하게 짓이겨지고 왜곡될 테지만 그 덩어리의 무게는 똑같기에 형태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기억들은 흡사 몸에 남겨진 거무튀튀한 멍 자국과 같습니다.  ‘아, 그랬었지.’

생채기가 난 줄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잊고 지냈던 멍 자국. 소매를 걷어야만 보이는 이 아픔의 흔적은 지각한 시점부터 괜히 욱신거리기 시작합니다. 멍이 불러오는 기억들. 푸르스름한 멍의 음영만큼이나 또렷하지 않은 기억들. 저는 그 멍을 괜스레 눌러보며 그 고통을 가늠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픈지, 건드리면 아플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조물조물거립니다. 이런 기이한 행동으로 인해 내가 얻을 것은 고통의 교훈과 내성뿐이었습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향하는 방향은 무뎌짐이었습니다.

 

금세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멍이 사라질 즈음에는 새로운 멍이 생겼습니다. 한동안 다시 또 소매를 내렸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 욱신거리는 이 멍들. 그랬습니다. 크기는 작았어도, 안쪽으로는 깊었습니다. 다소 무감각해졌어도 아픈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멍과 상처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멍은 한동안의 욱신거림을 남기지만 상처처럼 흉터를 남기지는 않습니다. 이 소멸의 성질은 기회였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굳이 건드리지 않고 외면하고 산다면, 지금처럼만 산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언제쯤 저는 다시 자신 있게 소매를 걷고, 상흔 없는 맨살의 팔로 누군가를 안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런 날, 궁상떨지 않으며 혼자 있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들어차면 끝날 줄 알았던 성장통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지금 이 외로움은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자기 최면에 빠져듭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쿵쾅거리는 심장은 방금 막 끝이 난 흔들림의 여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잔을 비우는 한 모금에 다 삼켜버립니다.

 

그 아득했던 몇 시간은 너무 좋아 외로웠습니다. 역설적이었던 오후의 시간.

 

이 여유가 가져다준 것은 희망이었을까요 고통이었을까요. 그리고 로맨틱함이 전혀 없는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를 바라본다는 것. 과연 이것은 기회일까요 후회일까요. 그 기분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 파리에서 만난 한국사람 - '몽마르뜨'에서의 동행 Ⅰ

 

 

술집을 나와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 쪽 계단 끝 즈음에 자리를 잡았스빈다. 낮치곤 꽤나 마셔댔던 술 때문인지 약간의 숨 가쁨과 어지러움이 느껴집니다. 고개를 들자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다닥다닥 오밀조밀 모여있는 파리의 모습을 바라보다 선글라스를 벗어 맨눈으로 풍경을 접합니다. 입꼬리 한쪽이 살짝 올라갑니다.

 

저기 어딘가에 있을 에펠탑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는데 한국말이 귀에 쏙 들어옵니다. 바로 왼쪽 앞줄에 앉은 두 명의 남녀. 한국 사람입니다. 혹여 말을 걸까 우려했을까요,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습니다. 하나, 딱 티가 났나 봅니다.

 

말을 건네는 두 사람. "한국 사람이시죠?“ 잠시 주저했지만, 뭐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미소를 보냈습니다.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 반갑다는 말부터, 커플이신가요 물어보는 오지랖까지. 대화 상대가 그리웠나 싶을 정도로 주절주절거렸습니다. 아마 술도 한몫했겠지요.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라 했습니다. 어느 사이트에서 동행을 구하다가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자는 직장인이었고, 여자는 유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제가 가장 나이가 많았습니다. 한참 동안 서로를 묻는 대화가 오가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겼습니다. 마치 소개팅을 하다 서로 말이 없어지는 그 순간처럼 말입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 무렵 때마침 몽마르뜨 언덕을 웃음소리가 채웁니다. 앞을 보니 광대 분장의 한 사내가 호루라기를 불며 재간을 피우고 있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오 재밌을 거 같아요!" 하며 화제를 돌렸습니다.

 

구세주처럼 나타는 그 사내의 공연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대단한 재주입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오로지 장난스러운 몸짓과 행동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장난을 유쾌하게 받아주는 사람들의 여유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사내의 잔망스러운 요청에 볼에 뽀뽀하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결혼 행진곡에 맞춰 걸어주기도 하고 말이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던 공연이 사내의 90도 인사와 함께, 그리고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끝이 났습니다. 여운에 한동안 침묵할 무렵, 두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저흰 이제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가려고요." 마침 저의 다음 일정도 대성당이었습니다.  "아 저도 거기 가려했어요. 이렇게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린 바로 사크레 쾨르 성당에 들어갔습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그곳의 면면들은  눈으로 담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나 지금 돌이켜보니 기록 없는 기억은 상대적으로 옅습니다. "이렇지 않아요?, 저렇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대화를 근근이 이어나가며 우리는 각자의 감정을 나눴습니다. 두 사람 모두 종교는 없는 듯했습니다. 어떤 오래된 성당을 가도 나올법한 그런 유의 이야기들. 그만큼 각자의 느낌은 상투적이었습니다. 그저 유명 관광지이기에 방문해본 느낌. 대화 외적으로도, 대강 훑고 지나가는 시선과 걸음의 속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한편으론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성당이란 성당은 이미 꽤나 보았고, 생전 처음 본 사람의 기도를 기다릴 정도로 여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린 매우 짧은 시간만에 한 바퀴를 돌고, 옥상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사실 이 전망대는 존재의 유무 자체도 파악하기 힘들었던 곳입니다. 프랑스에 살았던 사람들도 사크레 쾨르 성당에 그런 것이 있었냐고 오히려 되물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제가 이곳을 찾게 된 것은 인터넷도, 여행 책자도 아닌 후배의 말 한마디였습니다. 

“형 높은 거 좋아하시면 거기 가보세요.” 물론 그것마저도 다녀온 사람 사이에서 '있다, 없다.’ 로 의견이 갈렸었지만. 그래서 그냥 이곳에 도착해서 생각하기로 하고 미뤄두었었던 곳입니다.

 

운 좋게도, 성당을 나와 뒤로 돌아가자마자 발견한 지하 계단의 매표소는 바로 제가 찾던 그곳이었습니다. 전망대 입구임을 한번 더 확인한 후 좁고 가파른 나선형의 계단을 올랐습니다. 개선문의 그것과 느낌과 비슷하지만 좀 더 오래되었고, 마찰력이 약한 미끈한 느낌의 돌계단이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린 각자 투덜 섞인 신음을 지르며 가쁜 숨을 골랐습니다.

 

역시나 이곳의 존재를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듯했습니다. 좁은 복도지만 사람이 없어 쾌적한 기운이 감돕니다. 바깥으로 다가가자 뻥 뚫린 기둥 사이로 파리 시내가 바람과 함께 눈에 들어옵니다. 오후의 어중간한 시간과 살짝 구름이 낀 하늘은 파리 시내를 그대로 반사시킨 듯했습니다. 대부분의 지붕이 하얀 색인 것에 놀랍니다. 가장 화려한 도시일 것 같던 파리 시내의 전경은 나름의 담백함과 수수함도 갖고 있습니다. 우린 미치도록 좋다는 언어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스스럼없이 전달했습니다. 저는 어제의 개선문을 예로 들었고, 다른 남자는 영국 어딘가의 야경을 예로 들었습니다. 유학생인 여자는 파리에 오고 난 후, 관광지가 처음이라며 마냥 좋은 듯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시끌벅적스럽게 전망대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이날 저는 친구랑 있을 때 보다 더 많은 이야길 했습니다.

 

우린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단지 저 홀로 그들에게서 떨어졌던 것 일수도 있겠지만. “잠시만요.”라는 말을 남기고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 에펠탑 찾기에 매진했습니다. 새끼손톱보다 작게 보이는 앙증맞은 에펠탑. 에펠탑을 가릴 만큼의 고층 건물이 없음에 한번 더 감사합니다. 누군가 나중에 유럽 도시의 아름다움을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탁 트인 시야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오똑 솟아있는 에펠탑은 이곳이 네가 꼭 봐야 할 곳이라며 지도에 고정핀으로 꾹꾹 눌러 표시를 해놓은 것 같습니다. 그 중심을 따라 파리의 삶들이 얌전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파리에서의 2.5일은 이미 충분한 익숙함을 방해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어쩜 이렇게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을 수 있는지요.

 

사진 찍기에 정신이 팔려 한동안을 있었습니다. 기척이 느껴져 뒤를 바라보니 두 명이 어느새 다가와 어물쩍 거리고 있습니다. 슬슬 내려가자는 싸인입니다. 그들 중 유독 나만이 에펠탑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너른 시야를 가진 그들이 저보다 더욱 파리를 제대로 즐기는 것 일수도 있겠습니다. 이 풍경이 아쉬워, 시간을 끌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마침 좋은 소재가 있었는데 그것은 전망대의 벽과 창 사이를 채우고 있는 각각의 기둥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은 날카로운 것으로 긁혀 만들어진 낙서들이 생채기처럼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일종의 방명록과도 같은 그것들을 바라보며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낙서들이 자취를 감출 것 같지 않냐고.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을 남길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이유로. 또한, 이런 앤티크하고 투박한 느낌이 사라진다면 관광객 입장에선 조금 섭섭할 것 같지 않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당시엔 꽤나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을 찍은 후 우린 그곳을 내려왔습니다.

 

여행기는 잘 보셨는지요. 무더운 날씨, 냉방병과 감기 주의하시고, 몸 관리 잘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음주는 더욱 좋은 이야기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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