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

2022년 1월호

 

여러분 안녕하세요. 가을입니다. 완연한 가을입니다. 뒤늦은 여름 휴가를 다녀오고, 생각보다 매서운 추위가 왔음에 하루 하루 놀라는 요즘입니다. 차고 건조한 바람이 이불이 덮듯 살에 닿는 요즘, 한번 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산다는 것을 상기합니다.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점점 시간은 빨라져만 가고, 조급해 지는 시기이지요. 이런 기분에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좋은 글들로 끝과 이별이라는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려 합니다. 여행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바토무슈, 그리고 도시의 강

 

 

금요일 밤, 파리 시내의 교통체증은 살인적입니다. 10시 20분. 저는 가까스로 바토무슈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바토무슈는 대략 1시간 동안 세느강을 따라 파리의 주요 명소를 유람선을 타고 관광하는 코스입니다.

 

왜 이렇게 늦었냐며 담배 한 대를 물고 인상을 쓰며 투덜거리는 친구. 예상했던 반응입니다. 그래도 고작 하루, 아니 고작 몇 시간을 떨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또 반갑습니다. 우린 원래 10시 10분 배를 탈 예정이었습니다. 저의 지각으로 인해서 떠나보내야만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10시 30분 마지막 배가 남아 있었습니다. 10분 남은 시간, 서둘러 맥주 한 캔을 샀습니다. 마지막 배인 덕에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블로그의 팁을 따라 명당이라는 오른쪽 맨 앞에 탑승합니다.

 

아직은 9월 초이지만 건조한 공기 때문인지 세느강의 밤은 초겨울의 날씨입니다. 겨우 긴팔 셔츠 하나로 버티기에는 강바람이 상당히 매섭습니다. 도저히 맥주를 마실 여건이 아니었지만, 세느강을 적시는 빛의 낭만에 맥주가 빠질 수 없습니다. 오들거리며 맥주 한 모금을 마신 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이윽고 배가 출발했습니다. 금요일 밤, 강가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입니다. 한껏 크게 음악 소리를 높여놓고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지납니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그들이 한껏 내지른 함성소리는 반가운 환영의 표시였습니다.

우린 서로 손을 흔듭니다. 다리 밑을 지나가며 다리 위의 사람들에게. 강가를 지나가며 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요 건물을 지날 때마다 다양한 언어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한국어는 지하철에서 들릴법한 어떤 여성의 기계음 같은 목소리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어는 맨 끝 순위라는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선 감상, 후 설명입니다. 그 불일치에 어떻게든 아구를 맞추려 하다 포기하고 지도를 꺼냈습니다.

 

어둠은 세느강의 탁한 수질을 오로지 검정색으로 덮어버립니다. 맑게 재탄생한 그 심연의 짙은 검정색은 도시의 빛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합니다. 온갖 조명이 물결의 흐름에 따라 일렁거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까지 일렁이게 합니다. 물결 위의 건물은 춤을 추고 그 장단에 맞춰 괜히 고개를 까딱거립니다. 많이 보아왔던 풍경입니다.

 

당산역 쪽으로 갈 기회가 생기면 자주 양화대교를 오릅니다. 맥주 몇 캔을 손에 들고. 제가 참 좋아하는 곳입니다. 노래도 흥얼거려보고, 소리도 질러봅니다.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에 저의 목소리는 바로 묻힙니다. 중간 아무지점에 털썩 앉아 맥주 몇 캔을 마셔도 괜찮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차들이 지나가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근근이 들려오는 경적소리들. 양화대교의 산만함은 홀로 집중하기에 참 좋습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한적한 카페에서 공부가 더 잘되는 것처럼. 걷기엔 꽤 길고, 강바람이 세차게 몰아붙이는 척박한 환경이라, 단순한 이동을 위한 공간으로서 굳이 이곳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사연 있는 사람들이 찾습니다. 마구 팽창하다가도 문득 고요해져버리는 그런 마음이 필요한 사람들. 그렁그렁한 눈으로 강을 바라보며 자맥질을 하듯 숨을 털어내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그 몇 명의 사람 중에 저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도시의 검은 강은 저에게 그런 장소였습니다. 때론 잊기 위해, 때론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 역시 그런 마음입니다.

 

색깔의 빛이 아닌 그저 조용한 침묵의 빛. 그것은 투명한 바람을 타고 건물을 이루고 있는 돌의 결들을 은은히 밝히며 조용히 돋보이게 합니다. 배는 그 가냘픈 의식 속으로 유유히 흘러갑니다. 꾸밈도 없고 과함도 없습니다. 오로지 사람들을 위해, 시야를 밝히기 위해 조명을 켰던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날은 내일이지만, 마지막 밤은 오늘 이 순간 밖에 없습니다. 끝이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아픔의 방울들이 강에 흘러넘칩니다. 어리석게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길 바라는 간절함을 띄워 보냅니다.

 

한숨 반 탄식 반. 우린 서로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그것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갖자는 무언의 합의입니다. 친구의 눈가에는 그간의 여정이 서려있는 듯 했습니다. 이 배의 나머지 부분도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오로지 들려오는 것은 야속하게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안내방송 뿐입니다. 다들 우리와 같이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던걸까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계속해서 침묵이라는 언어로 나를 위로해주길 바랐습니다.

 

바토무슈에서 저는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대략 700여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생각하면 6초에 한번 꼴로 사진을 찍은 셈입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켜 놓고 방향키에 손을 떼지 않고 쭉 넘기자, 한 편의 영상처럼 사진들은 이어집니다. 정교하지 못한 손의 떨림으로 인한 흔들림은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찰나와 장면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쭉 이어진 사진만큼, 연결되어 있던 감정의 처음과 끝까지 그 전체를 기억합니다. 그 모두는 오로지 사진첩의 한 쪽으로 장식될 이야기입니다. 꾹꾹 눌러놓아 상대적으로 조금 더 무거운 한 쪽의 이야기지요.

반바퀴를 도는 순간, 그 터닝 포인트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던 감정. 그것은 정말 아름다우면서 슬픈 영화의 절정과 비슷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저편 너머에 보이는 것이 무슨 건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척 슬펐을 뿐입니다. 차가운 바람에 눈이 시렸고, 그것을 핑계로 시리도록 했습니다. 먹먹해진 목을 차가운 맥주 한 모금으로 해소합니다.

 

에펠탑이 점점 가까워짐은 이 배의 출발지이자 목적지인 그 곳에 도달하고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까만 하늘에 별자리처럼 수놓인 에펠탑의 노란색은 난로의 붉은 빛의 색과 같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차가워진 마음을 천천히 녹입니다. 배가 정지했습니다. 물살을 가르며 흔들리던 배도 이제 위아래로의 출렁임만을 반복합니다. 만약 마음이 정지했었다면 심한 멀미를 느꼈을 테지만, 이미 마음은 더욱 흔들리고 있었기에 그 울렁임이 상쇄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배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핸드폰 액정이 반짝입니다. 메시지가 왔습니다. 한국과의 시차를 생각한다면 꽤나 이례적인 일이라 평소와 다르게 바로 확인을 했습니다. 몽마르뜨에서 만났던 여학생입니다. 너무 감사하다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이야기. 유학생인 신분이니 사드렸다고, 다음에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오늘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대화를 더 하다, 한국에 오면 꼭 보자는 말로 우리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내가 준 것. 그 사람이 받은 것. 그리고 다시 내가 받은 것. 그 모든 것들이 떠오르며 단순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 몇 글자는 당시 왜 그리 벅찼는지. 기껏해야 형식적인 대화였을 뿐인데, 이별을 앞둔 공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요. 분명 준 것은 저였는데 오히려 받은 것처럼 답장을 하며 저는 분명 웃고 있었습니다.

액정에 고정된 눈은 여행이 줄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추억이었습니다. 어떤 도시와 자연도 줄 수 없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른 형태로 쓰인 작별의 인사였습니다. 지금 겪는 것과는 또 다른 마지막 인사. 기약이 있는 인사. 나만이 기억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는 인사.

 

그 덕에 오늘 도시의 강은 나에게 기억하기 위한 곳이 되었습니다. 웃음 섞인 슬픔에 저는 웃픈 상태가 되어 배에서 내렸습니다.



● 파리에서 만난 한국사람 - '몽마르뜨'에서의 동행 Ⅲ

 

 

그것에 가까워집니다. 눈에 들어오는 에펠탑의 모습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애잔함도 같이 자라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팽창하는 마음에 저 밑에 다가간다면, 온통 노란빛이 눈앞을 덮는다면, 풀썩 주저앉을지도 모를 심정이었습니다.

 

에펠탑 앞 잔디밭. 그 안은 이미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북적거립니다. 그 인파만큼 잡상인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에펠탑 모형 기념품과 술 등을 팔고 있습니다. 1유로에 에펠탑 모형 10개. 하루에 대체 얼마나 벌 수 있을는지 하는 연민이 들었지만, 그런 연유로 팔아주기엔 너무 짐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한 사내가 맥주 두병을 흔들며 다가옵니다. 이번에도 하이네켄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를까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나 하이네켄입니다. 여긴 프랑스인데 대체 블랑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요.

 

기존 맥주병보다 훨씬 작은 크기에 비싼 가격. 관광지의 특수성을 고려해도 이건 좀 심하다 생각했지만 애써 가격을 깎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의 온정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후하게 그 가격 그대로 지불을 했습니다. 에펠탑 모형을 사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그러나 이런 제 마음과는 반대로, 이 사내는 봉 잡은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샴페인을 연달아 팔려 하는 모습을 보고 직감했습니다. 어리숙하게 생긴 동양 남자가 흥정도 없이 물건을 사다니. 그런 간사한 마음이 솟았던 걸까요. 역시나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고, 그것만큼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내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이 사내가 원망스러웠지만, ‘이런 사람’들은 늘 그렇지 하는, 그 잠시의 오만한 생각에 죄스러워하며 그냥 그렇게 덮어두기로 했습니다.

 

풀밭에 맥주 한 병을 들고 주저앉았습니다. 같은 공간 속에서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 그들의 시간은 1초, 2초로 늘어나고 있었고 우리의 시간은 2초, 1초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과 닳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파리의 까만 밤과 이 노란 빛은 지금이 마지막입니다. 이 시한부의 상황은 감정의 밀도를 더욱 빽빽이 수놓게 했습니다. 그 마음에 눈이 약간 붉어져 노란 빛이 형체를 잃고 검노랗게 번지기도 했습니다.

 

들고 있던 맥주병은 모래시계가 되었습니다. 병을 채우고 있는 액체의 가로 눈금은 남아있는 시간을 수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더욱 삼킬수록 속은 채워지지만, 시간이란 놈은 저 멀리 달아나고 있습니다. 헤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안다는 것. 그것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과 같이 숙명에 놓인 이별입니다. 이 불가의 상황에서 전 그저 허덕거림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무턱대고 이곳에 눌러 살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맥주나 팔고 살까? 한국인 상대로 사전예약 받고 대량으로 팔면 먹고살긴 하겠지?”

 

오랜 시간 생각해낸 것이라곤 고작 이게 전부였습니다. 극소량일지라도 이렇게나마 현실적인 요소가 첨가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꿈의 형체라도 어렴풋하게나마 그릴 수 있으니까. 던지듯 내뱉은 이 몇 마디는 지금 심정을 조금이나마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이런 광경과 함께한다면 그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순수한 투정이었습니다. 아름답지만 연약한, 그리하여 현실이란 중압감에 언제든지 짓눌릴 수 있는 그런 순수함. 그렇게 높이 솟은 노란 피사체는 그 자체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시간은 00:00 마지막 밤이 끝나고, 마지막 날이 왔습니다. 별과 같은 하얀 빛이 에펠탑을 감싸는 10분 동안, 이제 안녕을 준비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빛이길. 2만 개의 전구가 깜빡이며 에펠탑을 뒤덮습니다. 그 점의 빛을 통해 요 며칠 동안 내가 이곳에 남겼던 수많은 점들이 한 개, 두 개 되살아납니다. 그 점들은 선으로 이어지고, 이어진 선은 면의 형태를 갖춥니다. 그 면들은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고, 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차 소멸되어 갑니다. 이내 조명이 꺼졌습니다. 어떠한 여운도 없이, 정전이 되듯 ‘팍’하고 불이 나가버렸습니다. 맥주병의 눈금도 0을 가리킵니다. 이제 이별의 시간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무렇게나 앉았던 바지에는 많은 것이 붙어있습니다.

‘탁’하고 털어냈습니다. 훌훌 털어낸 것이 아니라 둔탁하게 ‘탁.’

 

숙명이라면 곱게 받아들여야겠지요.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안녕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합니다. 달빛 마냥 노란 빛을 등지고 걸었습니다.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자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는 빛의 흔적들이 다행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떠나는 모습을 저 멀리에서 지켜봤습니다.

 

여행기는 잘 보셨는지요. 다음 호엔 마지막 유럽 여행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활속 대주·KC > 와글와글 글로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토리가 깃든 여행  (0) 2020.02.28
스토리가 깃든 여행  (0) 2019.12.27
스토리가 깃든 여행  (0) 2019.08.28
스토리가 깃든 여행  (0) 2019.06.27
스토리가 깃든 여행  (0) 2019.04.29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