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

2022년 1월호

 

여러분 안녕하세요. 봄이 찾아왔습니다. 벚꽃 구경들은 조금이나마 하셨는지요. 만물이 다시 생으로 돋아나는 이런 시기에 안타깝게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아직 진정되지 않아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시고 있었겠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도 계획해 두었던 여행이 취소되고 한참을 멍하게 보냈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예약한 여행을 취소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취소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전 세계가 위급한 시기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늘 그랬듯, 언젠가 이 사태도 진정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날. 그 때. 그 동안 못했던 여행, 만남,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까지 한꺼번에 누릴 수 있도록 조금만 참고 견디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번 여행기는 작년의 이야기 입니다.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저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무척이나 기억에 남을 대규모의 프로젝트로 여행했던 작년의 이야기. 바로 ‘터키’편 지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프롤로그 - 어느 도시 여행자의 자연 여행 이야기.

 

 

그래, 다음은 어디일까? 언제 생각해도 즐거운 고민이지만 반대로 이것은 꽤나 어려운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더 이상의 새로운 자극이 있을까 싶은 그간의 여정들. 딱 9일 정도의 시간. 그 시간을 가장 완벽하게, 그리고 더욱 새롭게 보낼 수 있는 곳. 그리고 아직은 누군가에게 생소한 곳. 그런 곳을 찾고 싶었습니다.

 

지난 여행 사진을 뒤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연도별, 행선지 별로 정렬된 폴더를 누릅니다.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사진 속 에피소드가 떠올라 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간 저는 전형적인 도시 여행자였습니다. 뉴욕,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파리, 도쿄, 상하이, 싱가포르, 호찌민, 홍콩, 쿠알라룸푸르, 방콕 등. 이미 지도에 찍힌 수많은 점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확고한 취향 때문이겠습니다. 낮에는 유명하고 인기 많은 음식점에 줄을 서 한 끼를 해결할 것. 그들의 문화재와 생활 모습에 수많은 셔터를 누를 것. 저녁에는 도시의 빽빽함 만큼이나 촘촘히 빛나는 야경을 보며 술 한 잔을 할 것.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인 대중교통을 타며 그들의 면면을 관찰할 것. 혹은 단순한 습관의 축척 차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토록 위대한 대자연으로의 여행 경험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으며, 타오르는 젊음이 연료가 되어 한적한 평온함과 시끌벅적 한 활기 사이에서 후자가 더 끌렸을 수 있겠습니다.

 

그래. 도시를 떠나볼까. 그리고 정말 독특한 문화권을 접해볼까. 그 생각과 동시에 딱 떠오른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터키’

 

기존의 제 여행과는 색다른, 또 다른 차원의 여행을 하고 싶던 마음과 터키라는 여행지는 딱 들어맞았습니다. ‘터키를 가려거든, 모든 여행의 마지막에 가라’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의 주요 요소인 도시, 문화, 자연, 음식을 모두 품고 있는 곳,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혼재하는 곳. 터키를 반 바퀴 도는 이 여행을 완료함으로써 스스로가 좀 더 숙련된 여행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혹여 이를 통해 저는 새로이 자연 여행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겠으며, 반대로 도시 여행자임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9일간 터키 국내선 3회, 렌트 3일, 약 23,000km의 터키 반 바퀴 여정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 이스탄불 쿰카피 – 처음 접한 터키의 일상

 

 

2019년 10월 12일, 17시 30분. 장기리 비행으로는 처음으로 직항을 타고 터키에 도착했습니다. 첫 감정은 불안과 긴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여행 전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행 단 3일 전 발발된 터키와 시리아와의 전쟁. 물론 전 지역에서 발생한 전면전은 아니었지만 도화선에 붙은 불이 어떻게 번질지는 장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주변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필사적으로 공들인 여행을 순순히 접을 순 없다는 생각에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의 책임을 온전히 짊어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공항 구석구석에 배치된 대테러 요원들의 모습은 더욱 감정을 어지럽게 했습니다. 그 무거움이 싫어 서둘러 짐을 찾고 첫 번째 숙소로 향했습니다.

 

관광지보다는 근처의 주택가. 깔끔한 도로보다는 좁은 골목길. 마지막으로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 여행에서 에어비앤비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그곳에 사는 누군가의 집. 그 집을 매개체로, 그 위치를 기반으로 하여 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맞닿아보는 것. 누구나 볼 수 있는 훤히 드러난 표면이 아닌 그 속의 면면을 볼 수 있는 것. 이것은 여행을 좀 더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이스탄불의 첫 번째 숙소였던 쿰카피(Kumkapı) 지역 근처의 주택가. 이곳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맞닥뜨린 모든 것들이 슴슴한 맛의 어떤 음식처럼 부담 없이 다가와서였습니다. 무지개색으로 칠해진 계단이 있던 오르막길 중간에 위치한 숙소. 그 덕에 이 계단을 관찰할 일이 많았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뛰놀기도 했고, 어떤 가족이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일상의 모습. 어릴 적 까마득히 더듬을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의 모습. 색이 칠해져 있다는 것 외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계단이었지만, 그들의 말소리가 배경음악이 되고,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장면으로 겹쳐지며, 어떤 푸근한 영상미로 머릿속에 잔상이 되어 남게 되었습니다.

 

그 수수함을 뒤로하고 계단을 차근차근 내려오면, 한창 달아오른 동네 술집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생생하고 날 선, 푸근함과는 또 다른 풍경. 그곳에는 우리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늘 마을 친구들과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그는 항상 상기된 얼굴로 반가움 가득한 인사를 건네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습니다.

 

이곳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한 꺼풀 한 꺼풀을 지나 심지까지 깊숙하게 들어온 곳. 골목을 빵빵거리며 내달리는 차들. 술 마시고 투닥거리는 아저씨들. 곳곳의 쓰레기들이 내뿜는 퀴퀴한 냄새까지. 가공되지 않은 투박함과 까슬거림이 그대로 피부에 전해지는 곳. 그야말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이런 곳에선 그런 마음이 됩니다. 정말 솔직한 상대를 만나 모든 걸 다 터놓고 싶어지는 마음이랄까요. 어쩌면 이곳에선 그리 무게를 잡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낯선 이방인과 현지인들. 서로를 경계하지만 호기심 역시 혼재하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의 상태. 그렇게 전쟁의 불안감은 잊었습니다. 이제 여행 초반의 가장 흥분되는 시간이 시작되려 합니다.



● 카이막을 맛보다 - Borisin Yeri

 

 

음식의 천국이라는 터키. 그곳에서 제가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카이막’ 이라는 음식이었습니다. 우선 ‘카이막’이란 물소 젖을 80도로 수차례 끓였다 식혔다 하는 과정을 반복해 만드는 유제품입니다. 400kg 원유에서 단 400g밖에 생산되지 않아 상당히 귀한 음식이며 한국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기도 합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백종원 대표도 포기했었다고 하네요.

 

저는 여행 가기 전 가능한 한 다양한 매체들을 많이 접하는 편입니다. 특히나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보는 편인데, 방송에 소개되는 다양한 음식 중 유독 ‘카이막’에 대한 반응이 환상적이었습니다. 특히나 음식의 신으로 불리는 백종원 님은 천상의 맛이라고까지 표현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터키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여행 약 2~3주 전에 방송된 ‘스트리트 푸드 파이트’라는 프로그램의 터키 편에서, 백종원 대표가 갔던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Borisin Yeri’, 보리스 인 예리나 보리신 예리라고도 불립니다. 마침 운 좋게도 제가 잡은 숙소는 그곳에서 불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런 우연은 필연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쿰카피 지역의 떠들썩한 술집들을 지나 골목 한편에 위치한 ‘Borisin Yeri.’ 카이막은 식사라기보단 간식이나 디저트와 같은 느낌의 음식이기에, 이른 저녁에 그곳을 들른 사람은 우리와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부부밖에 없었습니다. 터키에 도착하자마자 들른 식당에서 한국인을 마주칠 줄이야. 그리고 주요 관광지와도 꽤나 먼 거리에 위치한 이곳에서.. 이럴 때 보면 방송의 힘이 참 무섭긴 합니다.

 

서둘러 카이막과 ‘차이’를 주문했습니다. ‘차이’는 터키식 홍차로 터키에서는 거의 국민음료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카페에 가서 커피를 즐기는 것처럼 말이죠. 방송에서 둘의 조합이 참 좋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 주문해 보았습니다.

 

이윽고 나온 ‘카이막.’ 터키에서 ‘카이막’을 주문하면 ‘카이막’ 그 자체만 나오지 않습니다. ‘카이막’이라는 유제품과 그 맛을 한층 더 끌어올려줄 달달한 전통 꿀. 그리고 바게트 빵과 함께 나옵니다. 바게트 빵에 ‘카이막’을 바르고 꿀을 찍어 먹는 것입니다. 보기엔 언뜻 치즈나 크림과 비슷하기도 한데, 이것이 과연 맛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일단 빵은 제외하고 카이막과 꿀만 조심스럽게 한입 넣었습니다.

 

상당히 밀도감이 있는 생크림 느낌입니다. 엄청나게 응축된 크림의 느낌. 그리고 풍부하게 밀려오는 고급 진 고소한 맛. 거기에 과하지 않게 달달한 꿀이 합쳐지니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맛입니다. 아 이래서 천상의 맛이구나 싶었습니다. 여러 방송들에서 보았던 반응들이 과하지 않았음을, 진정성이 있었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번엔 빵과 함께 먹어보았습니다. 그리 딱딱하지 않은, 촉촉한 느낌의 일반적인 바게트 빵입니다. 거기에 카이막과 꿀을 발라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이것 역시 좋습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빵의 염도와 만난 달달하고 고소한 맛의 조화. 그리고 크림의 오일리 한 느낌과 단 맛을 중화시켜 주는 차이 한 모금까지. 우리는 거의 흡입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터키에서 첫 끼는 매우 환상적인 경험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행기는 잘 보셨는지요. 여러분이 생소하실 수 있는 터키의 이야기입니다. 미리 스포를 하자면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나라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럼 저는 한여름에 다시 돌아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본문 내용 중 일부는 에어비앤비 작가 프로젝트에 게재된 글로서 에어비앤비 코리아에 저작권이 귀속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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