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

2022년 1월호

 

여러분 안녕하세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0년. VISION2020을 이야기하던 그 2020년이 벌써 다가왔네요. 여러분들께 2019년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으신가요. 미처 다하지 못한 후회도 있을 것이고, 자그맣게나마 피어 오르는 희망을 발견하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저에겐 나름대로의 뜻 깊은 해 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 그대로 2020년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구요. 매년 느끼는 연말과 연초의 느낌. 올해는 그 느낌 그대로 잘 가져가시길 바라면서 끝이 머지 않은 여행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노트르담 성당의 '창'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커튼을 걷어 맑은 하늘을 확인했습니다. 끝까지 도와주는 날씨가 연신 고맙습니다. 몇 초처럼 느껴진 잠에서 깨어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줄인 잠의 부작용에 연신 하품을 내뱉습니다.

 

파리의 상징이자 파리가 시작된 시테섬으로 향합니다. 도시의 강과 그 안의 섬.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이미지는 더욱이 호기심을 짙게 했습니다. 시테의 뜻은 중심지, 발생지의 뜻이라 합니다. 저흰 마지막에서야 시작으로 이동합니다.

 

턱없이 모자란 시간임에도 우린 쭉 걷기로 했습니다. 스치듯 접하기엔 다 놓칠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기억하고자 했다면, 그것의 이름이나 생김새 정도는 촘촘히 새겨놔야 할 것 같았습니다. 시테섬이라는 이름 하나로 뭉뚱그려 면면을 기억하기에는 차라리 다른 곳에 집중하고 아예 보지 않는 것이 더욱 낫다 싶었습니다.

 

첫 번째는 노트르담 성당입니다.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작품으로 이미 유명한 곳입니다. 지금껏 봐온 유럽의 성당과는 또 느낌이 다릅니다. 전망대에 오르고자 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성당을 빙 두르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 대기 시간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리 일찍 줄을 설 수 있었던 것은 여유였을까요 부지런함이었을까요. 아마 그 사람들 중 우리가 가장 바빠야 했을 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한쪽의 부지런함은 다른 부지런함을 만났을 때 나태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성당 외부를 먼저 돌기로 했습니다.

성당 외부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상념에 젖어있는데 히스패닉 계로 보이는 한 여인이 어떤 종이에 싸인을 요구합니다.

 

' 아.. 이거.'

여행 계획을 세우며 이미 숱하게 들어온 사기 수법이라 바로 거절을 했습니다. 보통, 종이의 내용은 금전을 요구하는 내용이고 사인을 하는 순간 몇 유로를 요구한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유독 이런 형태의 사기가 심하다는 말에 온 신경을 세우고 다녔었는데, 그것을 마지막 날에서야 만났습니다.

 

외면하고 지나쳤건만 계속해서 따라오며 싸인을 갈구하는 여인. 그런데 그것은 강요라기보다는 처절한 부탁에 가까웠습니다. 어쩌다 마주한 그 여인의 눈에는 어떤 절박함 같은 것 있었습니다. 눈이 깊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인종적으로 큰 눈은 수심을 더욱이 깊어 보이게 했습니다. 간절하다는 표정은 이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옆을 따라오는, 자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더욱 발걸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혹여 연민을 위한 그 여인의 절묘한 설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런 생각은 어떻게든 저의 거절을 정당화하려는 버둥질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늘 마음을 착잡하게 합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껌을 파는 할머니, 봉사 단체라고 소개하며 장미 등을 파는 고등학생들. 악의가 없어 보이는 그런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할 때마다 마음이 저릿해지곤 하는데 지금 감정이 그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건 하나 팔아준 적 없는 저지만 그들이 나간 후에는 잠시 동안 마음이 수분기 하나 없는 뻑뻑함의 상태가 됩니다.

 

그런 생각이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차라리 화를 내고 가거나, 욕지거리를 늘어놓고 간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 이렇게 잔잔하게 끝이 나면 나는 힘든 이에게 손 한번 내주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몇 백의 돈을 써가며 여행을 다니는데 고작 몇 유로에 아까워하며 그녀에게 있어 최후의 생존 수단을 외면할 수 있는지. 물론 무조건적인 베풂이라 해서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계속해서 주저하는 모습에 제풀에 지쳤는지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로 향했습니다. 아이들도 다시 졸졸 따라갑니다. 감히 그쪽을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행여 눈이라도 다시 마주친다면 나는 아마 사인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여인을 등진 채, 그 마음을 안은 채 노트르담 성당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무언가 얹힌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10년간 체해본 경험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더부룩했습니다. 이것은 과한 섭취로서의 불편함이 아니었고, 하도 채운 것이 없어 느껴지는 속 쓰림과 비슷했습니다.

 

내부를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치다 한 곳에서 걸음을 정지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스테인드글라스에 창이 하나 나 있습니다. 다른 유럽의 성당에도 있는 것인지는 얕은 지식으론 모르겠으나 분명 처음 보는 창이었습니다. 그곳에선 신선한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입구를 제외한다면 이곳은 내부와 외부를 이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같았습니다. 특히나 어두운 실내에 밝혀진 하얀빛은 집중력을 뺏어오는 힘이 있었습니다.

 

창은 단절이자 소통이었습니다.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기도 하고, 잇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부의 몫이었습니다. 닫아둘 것인가요, 열어둘 것인가요.

 

그것을 보고 있자니 아까의 여인이 떠올랐습니다. 그 눈동자가 떠올랐습니다.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틈새. 한 손 정도는 내밀어 줄 수 있는 창. 그 정도만큼이라도 마음에 창이 하나 열려 있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들어오고 나가고, 그 구멍 크기의 범위 안에서는 어떤 것이라도 자유롭게 들락날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창의 크기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아직 너무 작은 창을 키우기 위해, 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사실,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창이지만 제 것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 생트 샤펠

 

 

‘생트 샤펠이라고 있는데 난 여기 추천.’

여행을 떠나기 전 지인과의 카톡.

 

원체 여행 계획에 있어서 남들 추천에 잘 반응하지 않는 고집이 있지만, 파리에 꽤 오랜 시간을 살았던 사람의 추천은 약간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생트 샤펠? 제 기억 속, 파리하면 떠오르는 명소 몇 군데 중에 이 단어는 없었기에 더욱 궁금증이 생깁니다.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하자, 눈에 들어오는 사진 몇 장. 이름에서 풍기는 우아함 만큼이나 눈부신 스테인드 글라스의 향연에 바로 여행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도보로 5분 정도를 걸어 생트 샤펠에 도착했습니다. 대법원 옆에 딱 붙어 있는 생트 샤펠. 외관은 상당히 초라한 편입니다. 이것이 입구가 맞나 긴가민가합니다. 고작 임시로 세워진 간이 차단봉과 이정표만이, 이곳이 제가 찾던 그곳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비좁은 입구를 지나 1층 예배당으로 입장하자, 화려하다 못해 정신 사납기까지 한 기둥과 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색감은 이번 유럽 여행을 통틀어 처음입니다. 금색, 빨간색, 남색의 원색적인 강렬함이 꽤나 고급스럽습니다. 회색빛의 밋밋한 시멘트 건물 내부에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다른 유명 관광지에 비해 소박한 규모 때문인지 그 내부는 더욱 화려하게 느껴집니다.

 

1층 예배당은 평민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데, 왕과 귀족을 위한 공간이었던 2층은 얼마나 엄청난 면면을 갖고 있을지. 여행 전, 검색으로 봤던 사진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아 바로 2층으로 이동했습니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고개를 들자, 뒤엉킨 보랏빛이 머리를 감쌉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오자 찌릿찌릿한 소름이 끼쳐와 몸이 부르르 떨립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색깔의 유리 조각을 모아 잘게 부숴, 긴 창을 만들어 놓은 모양새 입니다. 통일된 패턴과 연속된 색깔의 구성. 너비는 좁게, 높이는 길게 만들어진 파리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스테인드글라스. 그 높이 솟은 빛의 축복 속에서 뒤에 사람이 올라오는 것도 모른 채 걸음을 멈췄습니다. 저를 한순간 현혹시켰던 그 사진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빛의 영롱함이 물이 오를 대로 올라 탐스럽게 익은 듯 합니다. 아득해진 정신을 붙잡고자 꽤나 힘을 쏟아야만 했습니다. 생트 샤펠은 예배당이란 이미지가 갖고 있는 신성함과, 그것과는 거리가 먼 화려함이 양립하고 있습니다. 그 팽팽한 기싸움에서 우세를 보이는 것은 화려함이다. 하나, 그 기운을 다 잡아먹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초월한 모습이 자아내는 경이로움으로, 신성함을 수호하고 보완합니다.

 

이윽고 스테인드글라스에 나 자신을 투영하게 됩니다. 빛에 녹아내리는 느낌이랄까요. 와인 한 병을 들고 주저앉아 아픈 말들을 구구절절 털어놓고 싶은 느낌. 온갖 미안한 마음이 샘솟습니다. 문득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고해성사가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미안한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꺼냈습니다. 찢어내면 되는 더러워진 종이를 굳이 지우개로 문대다 회색빛으로 남겨둔 이야기들입니다. 속죄의 손짓을 통해 그 부분도 인생에 하나였음을 아로새깁니다. 이런 날에 유독 그 부분이 떠오르는 이유는 그런 것입니다. 몇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기억들. 하도 문질러 구김이 간, 그래서 덮고 있어도 울퉁불퉁 티가 나는 몇 페이지들. 그 응어리진 페이지들은 시기를 놓친 빨랫감과도 같습니다. 돌이키기에는 그 긴박의 시기를 너무나 허망하게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라 할지라도 저는 쌓이는 시간을 세제로 삼아 계속해서 씻어낼 것입니다.

 

말로 풀어내지 못할 미안. 글로 적어도 닿지 못할 미안. 저는 후의 개운함을 위해 가글을 하듯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는 상태로 따끔거림을 감내해야 합니다. 가끔 그것들이 입에 담기 벅차, 눈가로 역류하여 시큰하게 번질 때도 있겠지만 고통을 참고 머금어야만 합니다.

 

빛이 가장 잘 드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두 손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여행기는 잘 보셨는지요. 다음 호엔 드디어 마무리가 됩니다. 그 다음 여행기로 터키를 연재할지 미국을 연재할지 고민중 입니다. 심사숙고하여 더 좋은 여행기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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