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

2022년 1월호

 

여러분 안녕하세요.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건강관리는 잘 하고 계신지요. 올해 겨울은 많이 춥지는 않아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새해부터 유행한 신종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어느 때 보다 건강 관리에 필사적인 1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모쪼록 모두 건강한 새해가 되셨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유럽여행의 마지막.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 미식의 나라 프랑스, 그곳의 미슐랭 1 스타

 

 

우리는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했습니다. 점심 식사 장소는 'Benoit.‘

 

퐁피두 센터 근처에 위치한  이 음식점은 미슐랭 1 스타(미쉐린 가이드)를 받았던 곳입니다.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은 저 홀로 여행 계획 전체를 세우고, 유명 관광지의 입장권 등을 사전 예약한 것에 대한 친구의 감사 표시였습니다. 제 만족을 위한 이기심의 행동이 이렇게 비치게 되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런 것을 굳이 거절하는 성격은 아니기에 냉큼 그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미슐랭 가이드의 본 고장이자 미식의 천국 파리. 먹는다는 것에 대해 거창한 의미를 달고 사는 저에게, 파리에서 먹는 정통 프렌치 요리라는 것은 생의 목적을 위한 섭취가 아닌 맛의 탐닉이자 인생에 또 없을 유일무이한 기회였습니다. 식에 대한 탐은 자칫 다른 결핍에 대한 보상이나 포만감 이상의 과욕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영화 ‘라따뚜이’와 ‘먼 나라 이웃나라 프랑스 편’등을 보며 자라온 제 기억은, 그런 경계를 충분히 무력화시킬 만큼 강렬했습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의 식사는 저에겐 버킷리스트 이상의 경험이었고, 우리에겐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상징적인 의전이자 최후의  만찬과도 같았습니다.

 

예약 시간 30분 전에 도착한 Benoit. 외관은 그저 평범한 식당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왠지 모를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백화점 1층 명품관을 서성거리는 것처럼, 들어가도 되나 싶은 그런 느낌입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자 바로 앞에서 요리사 복장과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단체로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방문하는 것은 서로에게 무례한 행동이었을까요. 제 평생 그렇게 많은 사람이 식당 문턱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순간 그들도 놀라고 우리도 놀랐습니다. 그들이 놀랐던 이유는 아마도 고급 식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우리의 추레한 행색 때문이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멀뚱멀뚱. 어색한 대치 상황을 깨려 미스터 김이라 하자, 그제야 눈빛이 온화해집니다.

 

담당 서버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로 이동했습니다. 이곳 역시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에 기대하는 쾌적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는 시선에 대한 개의치 않음이 귀결된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 같아 보였습니다. 테이블에 앉자 눈앞의 식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고풍스러운 장식에 큼지막이 적힌 B는 이곳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리고 겉을 두르고 있는 금테의 자잘한 흠집들은 세월을 의미하는 오랜 날들의 연혁이었습니다.

 

메뉴판을 받아 들고 우리는 한동안 번역 일에 몰두해야 했습니다. 런치 메뉴라 전식에서부터 본식, 후식까지 골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어떤 메뉴인지는 알 수 없었고, 물고기인지 오리인지, 소인지 이 정도로 가늠만을 한 채 주문을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따로 샴페인 한 잔씩과 푸아그라를 주문했습니다.

 

곧바로 나온 로제 샴페인. 친구와 나는 잔을 들고 오는 서버를 보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한 잔에 18유로인데, 잔의 크기는 한 입에 털어 넣어도 모자랄 만큼 작았기 때문입니다. 우린 장미향을 느끼는 척 입맛만을 다시며 거의 그 샴페인을 입술을 적시는 용도로만 사용했습니다.

 

 

차례차례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식전 빵에서부터 푸아그라, 전식과 본식까지. 여행 전에 참 말이 많았던 푸아그라 요리는 첫날의 식사보다는 별로였습니다. 강제로 사료를 먹이는 ‘가바쥬’로 인해 동물 학대 논란이 많은 음식인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나, 끓어오르는 궁금증은 끝내 이기적인 선택을 만들어냈습니다. 위선적 이게도 마음만큼은 그렇게 자란 거위가 아니길 빌었습니다. 무화과 잼이 곁들여져 나온 푸아그라의 맛은 예상대로 녹진하고 기름진 맛이었습니다. 달달하고 상큼한 무화과 잼과 적절히 어우러졌으나 매트한 식감은 잔향을 너무 오래 끌고 갔습니다. 아마 푸아그라는 이번 여행에서의 식사가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죄책감이 깃들어진 채 얻은 것은 후에 언제라도 켕기기 마련이니까요.

 

전식과 본식은 모두 생선 요리를 먹었습니다. 고등어 무침과 대구 요리. 전식은 다른 메뉴를 골랐으나, 생선을 못 먹는 친구에게 특히나 비리기로 유명한 고등어 요리가 나와서 흔쾌히 바꿔주었습니다. 전식과 본식 모두 맛은 좋았지만 그 식재료가 가질 수 있는 한계가 분명 드러나는 듯했습니다. 미슐랭 1 스타라 해서 확연하게 차이가 있는, 그런 특별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본식에서 대구 요리와 어우러진 레몬 소스는 꽤나 신선했습니다. 

 

 

후식으로 나온 타르트는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파삭한 시트에 달달한 필링.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오로지 미각에만 집중하게끔 만드는 맛입니다. 이후 마들렌과 초콜릿까지 먹고, 에스프레소까지 마신 후에야 식사는 끝이 났습니다. 우아하게 마셨으면 좋았으련만 기어코 차가운 얼음을 주문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식당을 나가며 식사 내내 열심히 재료 설명을 해주었던, 좋은 샴페인과 와인을 추천해준 서버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팁을 후하게 주고 싶었으나, 우리의 경제 상황은 당장 공항에 가는 것마저 고민해야 했었기에 미소와 인사로만 대신했습니다. 그렇게 Benoit에서의 식사는 끝이 났습니다. 새로운 경험이라는 측면의 그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채.

 

그 대가는 대략 180유로에 육박했습니다. 이십몇 만 원어치의 경험. 제 지출이 아니어서 그랬을 수 있겠지만 저는 꽤나 만족스러웠습니다. 그 음식의 맛이 확연하게 특별하다거나 좋아서가 아니었고, 그저 오랜 숙원을 하나 이뤘다는 것이 내심 흐뭇했습니다.

 

삶의 미련들을 채우는 것. 빈 공간들을 채우는 것. 많이 먹기도 했겠지만 이 포만감은 소화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 - 루브르의 피라미드를 보며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와 도착한 루브르 박물관. 꼭 보고 싶었던 곳 입니다. 가운데 불쑥 솟아난 투명의 피라미드. 큰 건물들에 둘러싸인 아담한 조형물은 새 둥지에 있는 알과 같습니다. 아끼고 싶고 보듬고 싶습니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계속해서 그 주변만을 맴돌았습니다. 끝내 간사하게도 어젯밤의 저녁식사를 잠시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 갔으면 루브르 박물관은 가봐야지.” 아마 프랑스에 가기 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로 기억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칭송하던 곳. 그러나 저는 끝내 그 내부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애초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얻을 것이라곤 딱 이 정도였습니다. "아 거기 가봤어. 그거 봤어." 허세가 잔뜩 들어가 자랑하듯 늘어놓을 몇 마디. 기회비용이 너무 큰 몇 마디.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결코 아니지만, 저는 그림 몇 개를 보고 문화적 소양이 늘어난다거나 미술적인 영감이 떠오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내부를 관광하기에는 시간도, 관심도 크게 없었습니다. 눈썹 없는 한 여자의 그림을 보기 위해 그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오랜 시간을 기다릴 인내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이미 굳어진 결정에선 ‘약탈의 산물인 전리품들을 굳이 왜?’ 가끔 별 이유 없이 삐딱해지는 마음도 일조를 했습니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곳. 꼭 가봐야 한다는 곳. 진심 어린 주변의 말 몇 마디면 잠자코 물들 법도 한데, 늘 이런 연유로 동화되는 것을 뿌리칩니다. 저에게 있어 선택의 기준은 늘 제가 좋아야 했습니다. 생트 샤펠과 루브르 박물관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전 편식하는 사람이었다. 이 고집은 대체 누굴 빼다 박았을까요. 당장 뭐 먹을까란 물음에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런 고집을 갖고 사는 것은 대체 무슨 속셈일까요.

 

그늘진 난간에 기대어 계속해서 피라미드를 바라봅니다. 이렇게 꽤나 긴 시간이라면 박물관 내부를 관람해도 됐을 법했습니다. 유독 이 피라미드에 집착을 하게 된 것은 주변과는 전혀 색다른 이질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 느낌을 붙이자면 ‘튀다’라는 말은 왠지 차분하지 못한 것 같고, ‘독보적’이란 말은 주변과의 조화를 부정하는 것 같습니다. 딱 ‘독특’ 정도라 하고 싶은 그런 느낌입니다.

 

‘독특’이 단어는 제가 추구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고유의 색을 갖고 있어 눈에 딱 들어오는 사람. 스쳐 지나감에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게 하는 향을 갖고 있는 사람. 피라미드를 계속 바라본 것은 그 특별함에 투영된 저의 모습에 대한 애착, 혹은 무력감 일수도 있겠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자.' 그 모토대로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 보다는 어떤 것들을 하는 사람이 되길 원했습니다. 더욱 구체적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막연한 그런 사람.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했건만 ‘특별’ 보다는 ‘특이’하게 보이는 그저 그 정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떠돌고 있는 방황은 누군가에게는 이미 10여 년 전에 겪었을 진통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 일찍이 미래를 준비하는 주변 친구들에 비해, 철없고 무책임하게 치기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고민. 모든 일에는 그에 마땅한 시기가 있다는데, 저는 왜 늦깎이 신출내기가 되어 이제야 걸음마를 내딛으려 하는지. 해야 될 일은 계속 쌓여만 가는데 다른 일들을 자꾸만 끌어들여 삶을 오만가지 색으로 범벅을 만드는지.

 

피라미드에 비친 내 모습. 대뜸 프랑스 한가운데에 서 있는 제 모습에 묘한 이질감이 들었습니다. 네가 이곳에 있을 때냐고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발악을 한들 제가 원하는 만큼의 독특함은 평생에 갖지 못할 터인데, 순간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그것은 열등감과도 비슷했는데 요리조리 몸을 움직이자 창에 반사된, 뒤틀렸다 늘어났다 하는 제 모습이 지금의 마음 같았습니다. 현실로 돌아갈 때가 되어서인지, 더욱 현실적인 생각이 머리를 채웁니다. 가득한 고민으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튈르리 정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나와는 달리 세상 편한 사람들. 쨍쨍한 하늘과 상관없이 의자 하나, 돗자리 하나와 함께 이곳 사람들의 시간은 흘러갑니다. 녹조가 가득한 호수와 연두색의 의자. 그리고 온통 초록빛의 정원들. 피톤치드를 그대로 맡는 듯합니다. 초록의 세상입니다. 후에 누군가가 이곳의 사진을 본다면 아마 십중팔구는 봄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초록색이 주는 편안함. 그 기운에 긍정적인 마음이 다시 샘솟습니다. 그렇게 싫어하던 비둘기도 참새같이 귀여워 보이는 이곳에서 그 녹음의 품에 살짝 몸을 기댑니다. 옷을 통해 물든 색의 기운은 얼굴의 미소로 번집니다. 그 위로 스며든 햇빛으로 인해 눈은 잔뜩 찡그렸지만 말입니다. 그 덕에 마치 피에로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울창한 도시의 공원. 본래 나무가 있던 곳에 사람이 터를 잡은 모양새입니다. 사람이 살던 곳에 억지로 나무를 옮겨 심은 느낌이 아닙니다. 바닥에 트랙처럼 깔린 인공 고무라던가, 딱딱 들어찬 보도 블록이 없어서 좋습니다.

 

이름보다는 희미한 어떤 느낌으로 먼저 기억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별 감흥이 없어서 뇌리에 박히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이름을 뛰어넘는 느낌. 그 느낌이 너무 압도적이라 이름을 떠올리기도 전에 ‘거기’ 혹은 ‘그거’라는, 내뱉은 이름으로 대체되는 것들입니다. 이 공원도 그랬습니다. 숲을 이루는 수많은 나무, 꽃, 풀들. 그것들은 특별한 이름 없이 각자의 색으로, 형태로 도시의 공원을 대표하는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나름의 독특함. 이것들을 바라보며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는 찾은 것 같았습니다. 주체가 없는 특별함. 그것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시너지. 제가 겪었던 경험들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멋대로 자라고, 피어나지만 독특한 숲을 만드는 힘. 상당히 자기 합리 화적인 생각이지만 아무리 좋은 말도 받아들이거나 외면하는 것은 언제나 저의 결정권 아래에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걸음들은 삶의 연혁이 될 것입니다.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뻗친 수많은 발자국들은 반복된 실패와 시간의 낭비일 수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요소만으로 단정할 순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또 이런 고민에 자주 몸서리칠 테지만 이런 고민들은 제가 선택한 삶에서 감내해야 할 업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마음도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저편의 피라미드로 시선을 돌립니다. 같은 범주에서 다른 생각을 만들어낸 그 느낌이 새롭습니다. 양쪽에 시선을 번갈아 두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뻗친 것들은 과연 잔가지일까요 잔뿌리일까요. 만약 전자였다면 가지치기하듯 쳐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후자라면 언젠가는 온갖 자양분을 흡수하는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는 후자에 마음이 더 갑니다.

 

먼 훗날 이 나무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잎이 돋아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래로든 위든 풍성한 나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특한 나무로 말입니다.



● 안녕. 그리고 안녕

 

 

발이 멈춘 곳.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콩코드 광장과 에펠탑이, 왼쪽으로는 세느 강이, 뒤쪽으로는 튈르리 공원이. 작별의 인사를 위해 제공한 자리, 파리가 건네는 마지막 호의를 받아들입니다.     

 

친구와 나는 따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각자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그 인사는 단순한 안녕이 아닌 어떤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만 같은 명분을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멀찍이 놓인 의자를 질질 끌어, 모든 것들의 정중앙이다 싶은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고개를 돌릴수록 파리의  유명 관광지들이 차곡차곡 눈에 밟힙니다. 이별의 이름을 속으로 읊습니다. 무언가를 보면 항상 물음표와 느낌표를 찍어대던 마음이 지금은 온점만을 가득히 찍고 있습니다.

 

길고 긴 이야기의 끝.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전, 그 결말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의 나날들. 아름답고 행복했던 이야기들. 어느덧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짧고도 길었던 추억들. 카메라를 들어 그 순간들을 조용히 곱씹습니다. 그 사진들은 뒤죽박죽, 서로 내 마음을 흔들려 아우성 대고 있습니다. 카메라 액정에 손을 대어 그것들을 확대하기도 하고 한동안 넘기지도 못하며 더듬더듬 찬찬히 어루만졌습니다.

 

비현실적인 곳에서, 현실 감각 없이 자유로이 떠돌던 저는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합니다. 또 다른 시공간에 놓인 현실을 말입니다.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더 예민한 사람이었다면, 눈에 번진 아쉬움을 뚝뚝 떨구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별은 습기 하나 없는 완벽히 건조한 가루 상태여야 했습니다. 후하고 불면 날아가는, 툭툭 털어내면 떨어지는 그런 상태. 만약 일말의 수분이라도 첨가된다면 반죽과 같은 상태가 되어 서로 엉길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질척일 것이었습니다. 애써 떨어내더라도 끈적거리는 자국이 남을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경험이 빚은 기약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다음 버스는 분명히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나가는 버스를 따라 뛰지 않고 다음 버스를 차분히 기다리는 것처럼, 헤어짐은 일시의 상태란 믿음으로 그렇게 건조하고 담담해야 했습니다.

 

이제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차라리 작별을 고하고 바로 뒤돌았다면 달랐을까요. 늘 그랬듯 그 다짐 하나 지키지 못하고 저는 일어났다. 분명, 작별을 고했건만 계속해서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사람처럼 친구에게 ‘잠깐만’이라는 말을 남기고 세느 강으로 걸었습니다. 각자의 저편을 잇고 있는 다리 몇 개를 지그재그로 건너 다니며 그렇게 격정적으로 마지막을 담으려 했습니다. 그곳의 연인들, 강, 유람선, 가로수, 건물, 바람, 하늘, 햇빛, 그림자, 땅, 자동차, 길, 버스, 벤치, 카페 등 이것과 연관된 모든 것들을. 그리고 허무하리만큼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가속이 붙어 흘러간 시간이자, 멈춰버린 이성을 다시 현실로 불러온 시간..

 

이곳을 일어나서 공항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필시 모든 걱정과 고민이 한꺼번에 몰려올것입니다. 달리 맞이한 아침엔 한동안 시차 핑계를 대며 잠을 잔 듯 만 듯한 얼굴로 기어 나와 열병을 치를 것입니다. 그 시기가 한참 지난 후,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무렵 이 기억들은 정수리에서부터 슬며시 기어 나와 지친 목과 어깨를 다독거릴 것입니다. 이제 정말 안녕입니다. 안녕을 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안녕을 말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안녕. 다시 한번 안녕.  안녕했던 기억만을 남긴 채.

 

여행기는 잘 보셨는지요. 드디어 유럽 여행기가 끝이 났습니다. 이 글들은 제가 16년도에 여행한 것을 바탕으로 약 9개월의 시간을 걸쳐 집필한 ‘안녕 그리고 안녕’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2017년에 발매한 글들이었습니다. 많은 애착이 가는 글들이자 새로운 성취감을 안겨줬던 이 보물과도 같은 글들을 여러분들께 소개할 수 있어서 아주 영광스러운 기회였습니다. 다음호에선 새로운 여행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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